하루가 멀다 하고 냄새가 다릅니다. 9월이 깊어갈수록 가을도 깊어갑니다. 하늘은 푸르고 구름은 뽀얗고 초록은 점점 색이 바래지고 따갑던 볕은 따사로움으로 점점 바뀌어가는 계절. 조급한 마음이 먼저 가있는 시간에, 가을시 두 편을 소개합니다.
울음이 타는 가을 강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 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 질 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 박재삼 -
섣부른 느낌일까요.
바람이 몹시도 많은 날입니다. 이른 아침, 베란다에 나가보면 어느새 바람이 선선합니다. 가을이, 나 왔어라고 인사를 하는 기분입니다. 한낮, 열린 창으로 바람이 춤을 추며 너울대는 시간. 시나브로, 가을인가 봅니다. 가을 강이 보고 싶은 날입니다. 강위로 비치는 은은한 노을빛을 보고 싶은 날입니다. 노을 위로 흘러드는 추억의 그림자를 그리워하고 싶은 날입니다. 내 추억의 그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추일서정(秋日抒情)
낙엽은 폴ㅡ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포화(砲火)에 이즈러진
도룬 시(市)의 가을 하늘을 생각케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어 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라나무의 근골(筋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
한 가닥 꾸부러진 철책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우에 세로팡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ㅡ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황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 저쪽에
고독한 반원을 긋고 잠기어 간다.
- 김광균 -
가을을 그린다면
아마도 '추일서정' 같을 겁니다. 한 폭의 아름다운 가을 수채화. 시대는 달라도, 풍경은 달라도 가을은 어김이 없습니다. 지금의 가을을 그린다면 또 다른 모습의 가을 그림이 그려지겠지요. 왜인지 가을은 늘 쓸쓸하고 외로운 느낌을 줍니다. 애수(哀愁)가 가슴 한편에 똬리를 트는 계절. 예민한 오감이 소름처럼 감각을 곤두세우게 하는 계절. 이른 가을이 미리 마음에 가을을 자꾸만 물감처럼 풀어놓습니다. 멍하니 바닥에 앉아 눈을 감고 귀를 열고 코를 열고 있으면 여린 새소리, 맑은 바람 냄새가 온몸을 통과하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가만히 가을을 담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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